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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 is beautiful [ 2006.10.02 ]

2003년 일본 유학시절의 어느 날, 학교 근처 책방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 내 마음에 들어 온 한 권의 책이 있었다. 辻信一(츠지 신이치)의 「スロー・イズ・ビューティフル (Slow is beautiful)」이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あとがき(작가의 후기)에는 책을 쓰면서 느낀 소감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한 깨달음을 짧게 싣고 있다.

저자는 1980년, 몬트리올에서 생활하고 있을 당시, 지인에게 한 편의 시를 소개 받게 된다. 그것은 長田弘(오사다 히로시)의 ふろふきの食べ方 (후로후키-무・순무를 둥글게 썰어 푹 삶은 것에 양념된장을 발라 먹는 음식-먹는 법) 이라는 시였다. 당시 자취 생활을 하며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던 그에게, 음식, 더군다나 음식을 먹는 법에 대한 시는 그에게 꼭 걸맞은 시였다.

そうして、深い鍋に放りこむ。
그리고 나서, 깊은 냄비로 던져 넣는다.
底に夢を敷いておいて、
바닥에 꿈을 깔아 두고,
冷たい水をかぶるくらい差して、
차가운 물을 잠길 정도로 담아서,
弱火でコトコト煮込んでゆく。
약한 불로 보글보글 삶아 간다.
自分の一日をやわらかに
나의 하루를 부드럽게
静かに熱く煮込んでゆくんだ。
조용하게 뜨겁게 삶아 간다.

こころさむい時代だからなあ。
가슴 허전한 시대이기 때문일까.
自分の手で、自分の
나의 손으로, 나의
一日をふろふきにして
하루를 후로후키로 만들어
熱く香ばしくして食べたいんだ。
뜨겁고 구수하게 만들어 먹고 싶다.
熱い器でゆず味噌で
뜨거운 그릇에 된장을 발라
ふうふういって。
후후 불어가며.

이 시는 그를 행복하고 풍요롭고 가슴 따뜻하게 만들었다. 몬트리올의 겨울은 깊고도 추웠으며, 하루하루 빈곤했던 생활이었지만 딱히 불행하다고 느끼며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국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생활을 외롭다고 느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시에는, 그가 어느 샌가 잃고 살았던, 그리고 전혀 감지하고 있지 못했던 어떠한 감정을 끄집어 내주는 힘이 있었다.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어릴 적 그를 감싸주었던 기쁨-지금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에 대한 행복. 지금 나 자신에게는 있지 않은 미래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끌어안을 수 있는 기쁨-의 감정이지 않았을까. 작가는 생각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은 나의 짧은 일본 유학 시절 구입한 이 책에서 위와 같은 시를 발견하고 읽는 순간 마치 작가와 일체가 되어 그러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던 것은 아마도 기적에 가까웠던 것이었을지 모른다. 빨리 지금의 일상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는 나의 모습에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닳아가는 나의 감정에 쉴 틈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다.

2006년 10월. 오늘 나는 책장에 고이 모셔 두었던 이 책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하루, 바쁜 한 주가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주말. 누군가와의 만남, 해결해야 할 일들, 나 자신과의 약속들, 반드시 가야 할 곳들로 빼곡했던 다이어리에, 가장 오른쪽 귀퉁이에 남는 간만의 깨끗한 여백. 나에게 또다시 찾아 온 주말. 무엇을 할까. 일주일째 미뤄두고 있었던 방청소-책 정리, 빨래, 설거지-를 해치우고도 시간은 그 자리에 머무른 듯 하다. 낮잠을 청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꿈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무엇인가에 좇기는 악몽을 꾸었다. 익숙한 무엇인가에 의한 시달림.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인생에서의「뺄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하면 자신에게 득이 되고 실이 되는가를 영특하게 잘 계산해 낸다. 그리고 그 순간「뺄셈」의 개념에 대해 생각한다. 뺄셈을 한 후,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길 바란다.

なぜわれわれは、じぶんのでない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닌
人生を忙しく生きなければならないか?
인생을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ゆっくりと生きなくてはいけない。
천천히 살아야 한다.
空が言った。木が言った。風も言った。
하늘이 말했다. 나무가 말했다. 바람도 말했다.
                     (長田弘「人生の短さとゆたかさ」より)

인생에서는 무엇보다도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자칭 경험주의자를 외쳐대는 나에게도, 감당해 내지 못할 만큼 높다란 벽 앞에 부딪힌 순간, 나를 달래어줄 무언가를 찾게 되는 때가 있다. 그때의 나는 항상 인간이 태어난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본능적인 安らぎ(평온함)에 이끌리게 된다. 좇기는 일상에 허덕이고 있을 때, 갑자기 더해지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들이 찾아오는 순간, 그래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괴로워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은 분명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그 순간에 놓여져 있나 보다. 행여나 나 이외의 누군가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우선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고 나 자신을 인정하려는 시도부터 해 보는 게 어떨까. 나와 같이.

아직은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느림의 미학. 자연으로부터 얻는 가르침. 내일만을 생각하며 지내오다 어느 샌가 잊고 지내왔던 오늘 이 순간 지금의 나의 모습. 아름다운 것은, 바로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가을에, 더없이 좋은 긴 연휴의 시작을 앞에 두었다. 말 그대로 휴일에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 Slow is beautiful을 외치며 늦도록 잠자고, 고향 친구와 만나 맘 놓고 느긋하게 수다도 떨며 점심식사나 해볼까나.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고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자라가고 있을 것이다.

최지희, 고려대학교 대학원 일문과 재학

일본 뉴스 전문 매체-뉴스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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