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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북단지에 도착하다 [ 2006.09.17 ]

8월 18일(금) 오늘을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왔나 보다
달린 거리 89km 왓카나이-소우야미사키-왓카나이


어젯밤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이야기했으나 피곤해서 12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이제 어지간하면 잠을 깨지 않고 자는데 잠을 설쳤다. 옆자리에 누운 사람이 자면서까지 음악을 어찌나 크게 듣는지 이어폰을 통해 나오는 그 소리에도 잠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

MP3를 찾아내 요절을 내고 싶었으나 보이지 않는다. 자고 있는 남자의 몸을 더듬어 찾다가 혹 그 사람이 깨서 벌어질 그 당혹스러운 시cb에이션이 두려워 이도 저도 못했다.

지금 홋카이도 전역에는 수해를 입을 정도의 비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곳은 오전까지 날이 맑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부터는 비가 온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지체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얼른 '벤또'를 사다 먹고 출발.

그러나 소우야미사키로 향하기 전에 어제 지나왔던 길을 거꾸로 4km 정도 되돌아가 또 엄청난 언덕을 올라 왓카나이 공원에 갔다. 그곳에 세워진 동상을 꼭 보고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냥 여기서 눌러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왓카나이를 내려다보며 또 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어찌하나? 오전까지만 날씨가 맑다고 하니 싫어도 가야 한다. 이 정도의 여유도 부릴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거의 한 시간 정도 무거운 발걸음을 떼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페달을 밟는다. 왓카나이 항구와 방파제를 지나고 달리는데 무언가 다르다. 모든 풍경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 유명한 오로론 라인을 달릴 때보다도 훨씬 기분이 편안하고 마음속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 이유는 하늘이 정말 높고, 맑으면서도 푸르기 때문이고 바다가 여느 바다와 다르기 때문이다.

파도가 치지 않고 고요하고 또 낮게 세상을 하늘과 반으로 나누어 가진 듯한 바다기 때문이다. 확실히 다르다. 내가 보고 있는 이 바다가 북해(北海)이기 때문일까? 지금 나는 북한의 가장 북쪽보다도 더 북쪽에서 달리고 있다. 나의 시선이 조금 더 멀리 도달할 수 있다면 러시아가 보일 것이다. 소우야미사키에서 러시아의 사할린 섬까지 불과 43km. 이대로 배를 타고 러시아로 들어가 러시아 대륙을 관통해 유럽까지 거기서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상상이 잠시나마 스친다.

달리다가 또 어제 바로 옆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던 마코토를 만났다. 도쿄에서 온 대학생인데 사이클링부 활동을 하고 있다. 비행기로 홋카이도에 와서 일부분만 돌아본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왔는데 달릴 때는 따로, 그러나 머물 때는 같이 머문다고 한다. 나 역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함께 달리지는 않았다.

소우야미사키 도착. 드디어……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마음이 시원해지고 후련해진다. 지금 성급히 글로 표현하면 훼손될 것 같은, 복원시킬 수 없을 것 같은 벅찬 감정. 이곳은 어찌 보면 관광지이기에 볼 것 자체가 무언가 대단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계단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멀리 바라보고 있자니 왠지 걸어서 저 끝까지도 갈 수 있을 것처럼 고요하고 잔잔하다. 그러다 가까이 들여다 본다. 가만 보니 물고기가 엄청나다. 계단이 바다까지 이어져 있어서 한발자국이면 발을 담글 수 있는데 그곳부터 계속 물고기 떼가 바다 속에 보인다.

물반 고기반이라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가지고 있던 식빵을 던져주니 나한테 물보라가 튀길 정도가 된다. 지켜보던 꼬마아이들에게 식빵을 건네주고 나는 자리를 떠난다.

소우야미사키 최북단 비 반대쪽으로 가면 소들을 방목하는 넓은 언덕들과 풍차 50여기가 서 있는 곳이 있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최북단지만 보고 이곳을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에 나는 오후에 비가 오든 말든 여기서 더욱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아직 비가 올 듯한 날씨도 아니었고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돌아가면 된다. 그래도 행복할 것 같다. 피곤했는지 벤치에 앉아 바다와 방목된 소들을 바라보며 일기를 쓰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왓카나이로 돌아가는 길에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긴 대화는 못했지만 아무리 홋카이도에 자전거 여행자가 많다고는 하지만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 할아버지를 밤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왓카나이에서 방파제 아래에 텐트를 친다. 이곳은 마치 텐트를 치라고 만들어 놓은 곳인 것 같다. 방파제 아래로 무려 400m나 늘어선 오토바이, 자전거 족들의 텐트들은 그 자체로도 관광상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다. 오늘도 제이타쿠다! 하고 외치며 게를 먹어보려 나가보았는데 너무 비싸서 즉각 포기. 밥과 징기스칸 요리로 대신한다.

내 옆에 텐트를 친 앳된 오토바이 라이더가 말을 붙인다. 대학생인데 이제 겨우 만19살. 붙임성이 좋다. 앗! 그런데 오늘 길에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지나가신다. 서로 반가워서 할아버지는 아예 의자를 가지고 내 텐트 앞에 앉으신다.

벌써 한잔 하셨다는 말씀에 나도 맥주 생각이 난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고 잠시 설거지를 하러 갔다 왔는데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맥주 집에 가자신다. 지갑은 놓고 오라고 하신다. 여기서 또 홋카이도에 도착하던 날, 배에서 만났던 아주머니가 선물해주신 홋카이도만의 특별한 클래식(Classic) 맥주를 마셨다.

그때는 맛을 몰랐는데 맛있다. 게다가 여러 안주들에 나는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할아버지는 벌써 4번째 홋카이도를 자전거로 여행 중.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들려주시면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만나고 다시 못 만나겠지만 그렇다고 이 만남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 여기서는 이 자전거여행이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만19세 앳된 학생과 만24세의 나 그리고 환갑을 넘으신 할아버지가 모두 오늘 처음 만나 맥주잔을 기울인다. 이곳 왓카나이에서.

박세욱,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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