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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째 커플 탄생... 17번째 위해 최선 다하세요" [ 2006.09.08 ]

[8월17일(목)] 일본 전국 라이더들과 어깨동무하고 노래 부르다
달린 거리 97km. 테시오-와카나이.


와카나이가 어디인가? 홋카이도의 맨 꼭대기, 일본 최북단 마을이다. 일본 혼슈의 사사가와 나가레에서 만났던 자전거 여행자들 모두가 와카나이를 목표로 달리지 않았던가?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와카나이를 지나갔을지도 모르고 몇몇은 와카나이를 향해 지금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특별한 하루가 될 것 같다.

새벽4시 반에 일어났다. 어젯밤에도 비가 왔다. 사실 어제 텐트를 친 장소는 텐트의 반밖에 비를 가릴 수 없는 구조였기에 반은 비를 맞아야 했다. 돗자리처럼 쓰는 물건으로 나머지 반을 막았다. 비가 텐트 안으로 들어오진 않았지만 약간 축축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자면서도 맨살이 텐트에 닿으면 피하게 된다.

짐을 정리하다가 가방 속 눅눅한 수건 냄새를 맡았다. 오장육부가 흔들리고 현기증이 밀려온다. 내가 어제 뭘 먹었는지 확인하지 않았음에 감사할 뿐. 귀찮았지만 하이타이 '만땅'으로(?) 수건을 빨고 모든 빨래를 근처 동전빨래방에서 건조시켰다.

내가 보고자 했던 바로 그 풍경을 달린다

와카나이까지는 이제 겨우 약 70km. 달리기만 하면 점심 때까지 도착이 가능하지만 여기서부터 와카나이까지는 오로론(オロロン) 라인이라고 불리는 환상적인 도로다. 도쿄에서 만난 <가보기 전에 죽지 마라>의 저자 이시다 유스케씨도 이곳을 추천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날씨. 비는 그쳤으나 구름이 잔뜩 낀 날씨다. 그러나 주변 풍경은 내가 홋카이도에서 보고자 했던 바로 그것. 도로가 있고 왼편으로는 바다가, 오른편으로는 탁 트인 풍경이 끝없이 이어진다. 앞으로도 도로가 탁 트여서 나의 시선을 방해하는 것이 없다.

마음까지 탁 트인다. 갓길은 없으나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다. 지나가던 자전거 여행자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도로에서 드러눕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곳은 조류 보호 지역이여서 새들이 많다. 특히 매 여러 마리가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그런데 가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죽어있는 매를 발견했다. 안아보니 따뜻하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찬찬히 보니 자동차에 깔린 것은 아니다. 하늘을 날다가 달리는 차에 머리를 부딪쳐 목이 부러져서 죽은 것 같다. 하늘을 나는 모습이 장엄하기까지 한 새인데 지금 내 품 안에 연약하게 안겨있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대로 놔두면 도로 한복판에서 다른 차들에게 밟히는 것이 안타까워, 도로 가장자리로 옮겨주었다.

다시 만난 한국인 친구... 반갑고, 삼각대도 찾았다

배가 너무 고프다. 가는 길에 편의점 하나는 있겠지 생각했는데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배는 고픈데 무언가를 살 수가 없다. 점심 때쯤 만난 유일한 휴게소 하나. 오아시스를 만났다는 생각은 잠시. 맛없는 음식을 비싸게 사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한심하다.

어제 루모이 라이더하우스에서 만난 오사카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그리고 자전거를 바꾸어 타고 같이 달렸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다른 여행자들의 자전거를 한번씩 타보았다. 얼마나 느낌이 다른지 느껴보고자 했다. 여행을 위한 자전거라 확실히 편하다. 나는 와카나이로 바로 가지 않고 바닷길을 한바퀴 빙 둘러갈 것이었기에 와카나이 부근에서 헤어졌다.

왓카나이에 도착했다. 왓카나이역은 일본 최북단 역이다. 2년 전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할 때 가보았던 신탄리역이 생각난다. 이 곳은 최북단 역이기에 역에서 선로가 끊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정말 뜻밖의 인물을 만난다. 홋카이도로 가는 배에서 만났던 한국인 김낙영군.

이 친구와 같이 머문 하코다테역을 떠날 때 삼각대를 잃어버렸는데, 이 친구가 그것을 보관하고 있었다. 홋카이도에 도착하던 날 만났던 친구를 홋카이도의 최북단역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것도 이 친구가 일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에. 이미 한국에 돌아간 줄 알았는데…. 만나서 너무 반갑고, 삼각대도 되찾았다!

가정부부부터 어제 결혼한 신혼부부까지

오늘 숙소를 고심하다가 와카나이 라이더 하우스에서 머물기로 했다. 오늘 잠깐 비가 오다 그쳤으나 저녁이 되니 다시 비가 올 듯하다. 그래서인지 이 곳 라이더 하우스는 매우 붐빈다. 오토바이 여행자들이 정말 떼를 지어 들어온다. 다행히 나는 내가 잘 곳은 확보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학창시절 수련회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나도 소개를 했다. 역시나 유일한 한국인, 아니 유일한 외국인이다.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라이더들. 서로 다른 제각각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홋카이도를 온 여행자들이 긋고 있는 선(線)들이 지금 이 순간, 이 곳에서 교차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정말 평범한 가정주부도 있고 놀랍게도 바로 어제, 바로 이곳 라이더 하우스에서 결혼한 부부도 있었다. 이 곳 라이더 하우스에서 만나 알게 되어 결혼식도 여기서 했다. 신혼여행도 가지 않고 머물고 있다.

소개가 끝난 후 이 곳의 주인인 미도리 할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이 16번째 커플인데, 모두 17번째 커플 탄생을 위해 힘냅시다! 오늘 젊은 여성 라이더 몇명이 있으니 총각들은 최선을 다하세요!!"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다가 나중에는 허파에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중 고등학교 때 수련회로 돌아간 듯 하다.

오늘 하루 날씨는 흐렸으나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오로론 라인을 달렸고 이 넓은 홋카이도에서 낙영군을 다시 만났고 삼각대를 되찾았다. 이제 비가 오는 밤에 일본 전국에서 모여든 라이더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 밤은 깊어 간다. 내일은 또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박세욱,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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