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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본 척, 모르는 척 [ 2006.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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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하철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보고도 못본 척 하지 말자.'
치한을 보고도 얼마나 모르는 척을 하면 이런 문구가 버젓이 적혀 있을까? 언젠가 난 지하철 안에서 엄연한 사실을 모르는 척, 못본 척 하는 일본인들의 성향에 분노한 적이 있었다.
언젠가 실제로 내 눈앞에서 한 고등학교 여학생이 중년 남성에게 치한을 당하고 있을 때, 난 그 모습을 보고도 못본 척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모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참고 있는 그 여학생에게 창피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본인들이 말하는 "배려" 였던 셈이다.
그때 난 일본생활에 필요한 중요 덕목 중 하나를 알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부당한 것도 못본 척 해야할 때는 못본 척하기. 남을 배려하기 위해, 나를 위해 혹은 서로를 위해, 전체를 위해.
올해 8월15일은 아주 어수선한 하루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공약대로 8월15일 종전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참배를 했고, 아시아 제국을 배려하자고 주장해왔던 한 의원의 집은 불에 타버렸다. 그리고 방화가 난 그 현장에는 할복한 남자가 있었다. 일본에 대한 한국, 중국의 반발과 비난은 여러 시사토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남편과 나는 먼나라 이야기를 보듯 무덤덤한 척 했다. 모르는 척했다. 못본 척 했다.
우리 삶속엔 언제나 한일간 정치, 역사가 피할 수 없는 큰 산처럼 존재하고 있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어느 순간엔 더욱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우리집엔 '한일간 정치, 역사적 사건은 봐도 못 본 척하자' 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나는 언젠가 눈 앞의 치한을 못본 척했을 때의 숨막힘과 긴장감으로 이 합의를 지켜나가고 있는 중이다.
배혜린
▶ [일본어] 見ぬふりと知らないふり ◀
일본 뉴스 전문 매체-뉴스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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