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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원야승(3) [ 2020.11.30 ]

[뉴스재팬=포사단필] 귀농.

은행에서 퇴직한 K는 몇 해 지속된 지향 없는 생활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다짐하였다. 2,30년 여생에서 어영부영 인생 고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거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시골에 가서 힘 부치지 않을 만한 밭뙈기 한 자리 가꾸면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변화 욕구가 절실했다.

나이 60이 되어 귀농하겠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고, 삽질 한 차례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형편에 일을 벌이면 뒷감당할 자신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아내가 선뜻 따라나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일단 서울에서 벗어나야 했다.

이곳저곳 돌아보았으나 수도권의 땅값이 너무 높아 퇴직금으로는 적정 규모의 농지 확보가 어려워 강원도와 충청도 쪽으로도 알아보았으나 버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를 자주 찾아뵙지 못해 맘이 불편하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K는 그 어른을 찾아뵙고 귀농에 관한 조언을 얻기 위하여 내려간 곳이 문경시 동로면 황장산 아래였다.

땅 한 평에 3만 원, 수도권 땅 값에 비하면 거의 공짜 같다는 생각에 K는 일단 일을 저질러 8백 평을 매입하기로 계약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평당 1만원이었는데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운 거였다. 귀농 과정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K는 초보자로서 조심스럽게 시작하였다. 8백 평을 2백 평과 6백 평으로 나눠서, 2백 평에는 컨테이너를 들여 임시 거처를 삼고, 농사에 필요한 창고도 세웠다. 때마침 문경시에서 오미자 재배를 적극 권장하였기에 6백 평에는 오미자를 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문경 오미자 농원>이 생겨났다.

그는 먼저 마을 주민들에게 자신은 여기에서 오미자 재배에 그치지 않고 농사를 짓다가 생을 마감하고 이곳에 묻히겠다고 밝혔다. 그것은 새로운 이웃들에게 바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자, 자칭 ‘얼떨 농부’로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자신과의 결연한 약속이었다.

호밋자루 하나 없이 시작한 농사, 그는 겸손했고 서두르지 않았다. 조석으로 밥을 끓여 먹으면서 조심조심, 차근차근 이웃에게서 일을 배우며 자신을 시험하였다. 이 마을이 제2의 고향이 되도록 이웃들과 융화될 수 있을지, 과연 새내기 농부로서 오미자를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지, 현재의 체력으로 노지 작물 재배의 노동 강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때로는 외롭고 힘에 겨워 도회지에의 회귀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지를 5년 동안 시험하였다. 그는 끈질기고 진지했다.

마을 주민들은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하여 오미자 재배에 귀중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농업기술센터의 지원도 참으로 고마웠다. ‘농원에 내려와 밥만 해 달라’는 남편의 뜻을 존중하여 귀농 3년차부터 그의 아내는 두멧골의 주부가 되었다. 자신감을 얻은 K는 귀농 5년 만에 비로소 컨테이너에서 벗어나 아담한 주택을 마련하였다. 오미자 재배도 성공적이어서 재배면적을 차츰 넓혔고 수익성도 눈에 띠게 개선되었다.

뿌리 내린 귀농과 이웃들의 신뢰로 여유를 찾은 K는 이윽고 지역사회의 일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먼저 마을 자치회 운영을 정비하였다. 각종 자금의 입출을 명확히 계상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여러 안건의 논의 과정과 결정 내용을 정확히 기록하여 자치회의 체계를 잡았다.

그는 오미자의 인터넷 판매를 개시하여 이룩한 현저한 매출 증대와 판로 확장을 바탕으로 ‘정보화마을’의 지정을 신청하였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현지 실사를 거쳐 마을은 정보화마을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서 핸드폰 통화가 불편하던 산골에 안테나가 들어섰고, 농가마다 초고속 인터넷 이용 환경과 전자상거래의 기반이 구축되었다. K는 아직도 TV 난청지역인 이 두메산골의 정보화마을 지정 과정에서 자신이 감당한 선구적 역할을 귀농생활 중 가장 보람찬 일로 자부한다. 이제 <문경 오미자 농원>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그 이름 밑에 각 생산자의 실명이 인쇄된 상자에 오미자를 포장하여 판매한다. 산마을에 내려온 서울 댁도 부녀회장으로 활동하였으니 자연스러운 부창부수였다.

K는 사이버 농업인의 조직인 문경 정보화 농업인협회 창립 멤버로 활약하며 행동반경을 확대하였다. 동 협회는 시의 지원과 협조로 2010년 제5회 한국정보화농업인 CEO 전진대회를 문경에 유치하여 우리나라 농업의 스마트 농업화 정착을 향하여 한 발자국 더 나가는 데 일조하였다.

이제 마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이장은 먼저 K에게 의견을 구하며 협의한다. 그는 농사도 수익성이 보이면 젊은이들이 찾아온다고 힘주어 말했다. 귀농 첫해 이 마을은 25가구였는데 현재는 52가구로 증가하였다. 지역 번창의 기반은 특화작물 오미자이다.

귀농 15년차, 돌아보면 마을 주민들과의 바람직한 관계 형성도 어려웠다. 관에서는 허가 없이 반입 가능한 6평 이하의 컨테이너도 허가 받아야 한다면서 반입을 가로막아 속 터지던 때도 있었기에 해를 거듭할수록 몰라보게 달라진 귀농지원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¹⁾ 이제는 나이와 체력을 감안하여 더 욕심내지 않고 3천 평 규모인 농원을 점차 줄여나갈 계획이다. 요즈음 그는 산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멘토(mentor)로서 귀농을 희망하는 젊은이를 받아들여 1:1로 후계 영농인 교육에 나섰다.

지난 8월 허태웅 신임 농촌진흥청장은 취임사에서 “농촌의 소멸위기를 극복하고 ‘살고 싶은 행복한 농촌’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²⁾ 1960년대 후반 대학에서 농화학을 공부했던 K는 지금 당당한 산촌의 농부가 되어 살고 싶은 행복한 농촌 만들기의 견실한 일꾼으로 이 겨울도 바쁘다.

K군아, 허리 다칠라, 조심해라.

전영규 칼럼니스트

주.
1) 문경시 동로면에서 오미자 농장을 경영하는 귀농 4년차 양 씨 부부는 처음 귀농할 때 마을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갖도록 문경시로부터 집들이 비용부터 시작해 많은 도움을 받아 성공했다고 밝혔다(TBC NEWS, 2019.4.8.)
2) 한국경제신문,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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