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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문화의 수도(水都) 안동 [ 2019.06.30 ]

[뉴스재팬=포사단필] 1980년대 초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¹⁾에서 1주일 간 숙식하면서 연수받았을 때의 일이다. 동 연구원이 각 기관의 연수 또는 교육 담당 부서에서 한 사람씩 차출, 소집하여 실시한 연수였다. 그 내용은 거의 다 잊었으나 한 가지만은 기억한다. 연수 일정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세미나 형식의 강의가 진행되었는데, ‘한국정신문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정신문화’인가, 아니라면 ‘한국정신’과 ‘한국문화’인가, ‘정신문화’의 개념이 모호하지 않은가 하는 등 말은 분분했으나 결론이 없었다.

필자는 2003년 10월부터 서울특별시 주관 하에 관내 우리 문화유산의 해설을 시작했다. 시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해설에 도움이 되도록 1년에 한두 차례 유적지 답사 기회를 제공하였다. 하회마을, 병산서원, 봉정사, 도산서원 등을 답사하면서 뜻밖에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정신문화’라는 걸 다시 만났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낯부끄러운 캐치프레이즈와 마주쳤음이다.

실소를 금하기 어려웠다. 한국 유림의 주축이 영남유림이고 안동유림이 영남유림의 중핵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首都)라는 주장은 자기기만이요 허풍이다.

1961년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30년 TK정권이 몹쓸 짓을 자행할 때 안동유림이 나서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준엄히 질타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얼빠진 영남유림이 정권창출의 기반세력으로 자임하면서 권력이 던져주는 떡고물에 현혹되어 유가의 엄정한 비판정신을 상실한 채 부화뇌동하던 시절이었다.²⁾ 이에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首都)가 아니라, 그것을 안동호에 수장한 수도(水都)라고 치부해온 터였다.

1979년 가을 박정희는 시해 당했다. 영남인은 아직까지도 그들의 절대적 지지가 그의 비극적 죽음을 초래했다는 역설을 깨닫지 못했다. 더구나 그 때 그 시절에의 향수에서도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 무조건적 지지를 받은 그의 딸 박근혜는 2017년 봄 대통령직에서 파면 당했다.

절대적인 지지로 박정희의 죽음을 자초했고 무조건적인 지지로 박근혜의 전락을 자초한 영남인에게 안동유림이 이제라도 나서서 기막힌 역설을 지적하면서 눈 똑바로 뜨라고 타일렀다는 말을 들은 바 없다.

월초에 일부 안동유림 인사들의 황교안³⁾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한 ‘100년 만의 구세주’ ‘희망의 등불’ ’3•1운동 100년 만에 나타난 인물‘이라는 발언에 후폭풍이 거세다는 기사⁴⁾를 보았다. 그들의 언동에서 옥중 박근혜를 앞세워 한마디 명령이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던 그리운 시절에의 회귀를 희구하는 역주행의 몸짓마저 보였었다. 안동은 역시 영남인의 지지를 받는 정권만이 정통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정권이라는 쇠 힘줄 선민의식으로 한국정신문화를 결박하여 안동호에 가라앉힌 수도임을 거듭 확인한다.

안동유림은 박근혜가 왜 감옥에 있느냐고 분노할 게 아니라, 과연 그 누가 우리 박근혜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진지하게 성찰할 일이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주.
1) 2005년 2월 1일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2) 이황직이 이렇게 묻고 답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산업화에 기능적이었던 유교와 그 이전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유교는 과연 같은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이 책의 답은 부정적이다.”(이황직, 『군자들의 행진』 아카넷, 2017, pp.597-599).
3) 2016년 10월 20일,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황교안 국무총리 아니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사표를 들고 대통령을 만나 ‘이래서는 안 됩니다’ 고언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여기까지 온 것은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정철운, 『박근혜 무너지다』 메디치, 2016, p.215).
4) 한국일보, 2019. 6. 6.
100년 전 안동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3•1운동 당시 안동군은 19개 면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11개 면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시내는 주로 장날을 이용하였으므로 시장권을 중심한 인근 지역이 모두 참가하였다. 특히 23일 안동면 시위는 거군적인 성격을 띤 만세 시위로서 30여 명(일본 기록 15명) 이 살해당하여 경북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 당시 경북에서 일어난 일제 경찰헌병관서 습격 12회, 일반관서 습격 6회 가운데 안동이 각각 3회와 5회를 차지하고 있다. 이 사실만 보아도 안동 지역 시위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알 수 있다”(김희곤, 『안동 사람들의 항일투쟁』 지식산업사, 2007, p.312,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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