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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법칙 [ 2018.08.30 ]

[뉴스재팬=포사단필]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며칠 전에 당한 불쾌한 일부터 말했다. 원고 청탁에 따라 글을 한 편 보냈는데, 인쇄되어 나온 내용을 보니 편집자가 멋대로 고치고 자르고 문맥을 틀어 같잖은 글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편집자에게 전화하여 당신은 편집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힐난했다.

오래 전에 겪은 비슷한 일이 떠올랐다.

1985년 10월 서울에서 IMF•IBRD 제40차 연차총회가 열렸다. 총회에 참석한 미국의 베이커(James A. Baker) 재무장관이 당시 국제경제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제3세계 외채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이른 바 Baker Plan을 발표하여 국제금융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Baker Plan의 골자는 과도한 외채에 허덕이는 제3세계 15개 개발도상국에게 290억 달러의 신규 대출 공여였다. 대형 채권은행들이 200억 달러, IBRD 등 다자간개발은행(Multilateral Development Bank)들이 90억 달러의 추가 대출 부담을 떠안았다. 대출을 공여 받는 15개 채무국은 IBRD가 제시하는 조건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성장 지향적 경제를 확고히 하며, 이 계획의 추진 및 감독은 IBRD가 담당하도록 짜여졌다.

당시 국제부에서 일하고 있던 필자는 “Baker Plan에 관한 小考” 제하의 시론을 집필해 부장의 결재를 받아 서류철에 보관하였다. 연말께였든가, 월간 <조흥경제>를 발행하는 종합기획부 조사 파트의 원고 청탁에 따라서 이 시론을 보냈다. 2백 자 원고지 50여 매의 시론은 아래와 같이 전개되었다.

1. 개요
2. 배경
3. 반응
(1) 채권은행
(2) 채무국가
(3) IMF, IBRD,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
(4) 기타
4. 전망
5. 맺음말

1986년 2월 발간된 <조흥경제> 249호에 실린 시론을 본 순간 욕설이 튀어나왔다. ‘개요’를 1. 문제의 제기, 2. 개요, 이렇게 토막 내버렸다. 시론은 우선 당시의 시사에 관한 이해를 도모한다. 따라서 개요에서는 말 그대로 Baker Plan의 내용을 설명하였다. 편집자는 이 시론이 마치 중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치밀한 논리로 이것의 해소 방책을 제시하고 있는 양 ’문제의 제기‘를 내걸었다. 개요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주요 당사자 간 논란이 예상되는 점은 ’반응‘과 ‘전망’에서 짚었다. 스펠링이 잘못된 영문표기도 여럿 보였다. ‘有利’를 ‘有刊‘으로, 형상’을 ‘현상’으로 인쇄해버린 등등 오자가 수두룩했다. 더구나 여러 건의 각주도 삭제해버려 더욱 성질을 돋우었다. 결국 당신이 이 따위를 글이라고 썼느냐고 삿대질 당할 형편이 되었다.

교정조차 생략된 채 엉터리로 인쇄된 글이 게재된 은행의 얼굴 <조흥경제>는 이미 배부되었다. 국제부장이 결재한 은행의 공적 문서를 저렇게 엉망으로 인쇄해놓았으니 두 부장 사이에도 언짢은 말이 오갈 수도 있을 터였다. 누구의 책임이네 아니네 하면서 위는 아래를 타박하고 아래는 밑에 눈을 흘길 게 뻔했다. 친구는 편집인에게 당신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따끔하게 경고했지만, 필자는 그때 연락선은 초저녁에 떠났으니 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혼자 망신당하기로 작정했다.

경제조사지를 대충대충 편집, 발행한 종합기획부는 무책임했다. 속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외형상 같잖은 글로 은행과 <조흥경제>를 망신시키고도 편집자에게 강력히 따짐으로써 향후 동일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엄중히 경고하지 않고 슬그머니 덮어버린 나 또한 무책임했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무책임이야말로 대형 참사를 예고하는 300여 징후 가운데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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