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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짜리 어린애 [ 2018.07.27 ]

[뉴스재팬=포사단필]
1.
지난 6월 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콜롬비아의 국민화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Angulo)에 관한 교육이 2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그의 <12세의 모나리자> <발레리나> 등을 포함하여 여러 그림을 영상으로 보았다. 양감이 두드러져 포근하고 푸짐하면서도 상당히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원봉사자로서 박물관의 고려실과 조선실에서 문화유산과 그것들의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필자는 아무래도 ‘모나리자’보다는 ‘12세’¹⁾에 관심이 더 쏠려 곧 두 왕조에서 12세에 즉위한 네 임금이 떠올랐다. 고려 제30대 충정왕이 즉위 후 측근들의 권력투쟁과 왜구의 출몰로 나라가 불안해지자 원나라 순제는 그를 폐위시켰다. 그는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열다섯 어린 나이에 독살 당했다.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은 야심찬 숙부 수양대군에게 밀려 상왕으로 물러난 뒤 끝내 유배지 영월에서 죽음을 당했다. 제13대 임금 명종이 즉위한 다음 모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 하였다. 그에게는 저사가 없었다. 제26대 임금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었으나 1907년 강제퇴위 당했고 제국은 국치의 나락으로 굴러갔다.

2.
이쯤에서 일본이 떠올랐고, 근대문명의 척도로 볼 때 미국의 발달 정도가 45세라면 일본은 12세 어린애 같다는 맥아더(Douglas MacArthur)의 단평이 기억되었으며, 일본은 영원히 12세에 머물러 있는가(Forever twelve years old?)²⁾라는 매코맥의 질문이 뒤를 이었다. 일본의 저술가 겸 평론가인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는 한 인터뷰에서 “맥아더 말이 맞는지도 몰라요. ‘일본인은 열두 살짜리 어린애니까 총은 압수하고 우리가 보호해준다’고 했죠.”라고 말했다.³⁾ 스미스도 맥아더의 직설적인 ‘12세 발언’이 일본에게 거북했던 이유는 거기에 일종의 진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기술했다.⁴⁾
1990년 1월 모토시마 히토시(本島等) 나가사키 시장이 시의회에서 천황에게 전쟁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익단체들의 사과와 발언 취소 요구에 시달렸으며 약 1년 후에 과격분자의 총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생명을 잃을 번했다.⁵⁾ 2006년 8월 15일 코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자민당 전 간사장이었던 카토오 코오이치(加藤紘一)는 총리의 야스꾸니 신사 참배를 비판했고, 바로 이날 저녁 극우인사가 97세의 노모를 모시고 살던 그의 집에 방화해 모두 불타버렸다. 다행히도 노모는 출타 중이었다.⁶⁾

3.
1925년생인 오구마 겐지(小熊謙二)는 징집되어 1944년 11월 입영, 관동군으로 참전하였다. 그는 3년 간 시베리아 포로수용소 생활을 거친 후 1948년 8월 귀국했다. 그의 아들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는 부친과의 대담을 통하여 험난한 시대를 관통해온 노병의 생활사를 기록했다. 대담에서 오구마 겐지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군인이었고 천황은 대원수였기 때문에 전쟁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내보여서 무언가를 말할 마음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쇼와 천황이 아직 의식이 있을 때 사과해야만 했고 사과를 받고 싶었다.”⁷⁾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이즈미 지하루 교수는 자신이 한국으로 유학가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두툼한 편지와 함께 『종군위안부』라는 책을 보내주었다고 밝혔다. 편지에는 “이 책을 읽고 그래도 가야겠다면 가거라. 한국에 너는 가해자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드릴 각오가 있다면 가거라. 그러나 간다면 제대로 한국 사회를 보고, 제대로 공부해 와라. 어정쩡한 마음으로 가지 말거라.”라고 쓰여 있었다. 이즈미 교수는 아버지의 말씀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나침판이 되었다고 썼다.⁸⁾
지난달 3일 오후,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 교육문화회관 앞에서 600여 명의 시위자들이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레이시스트, 가에레(인종차별주의자, 돌아가).” 그들은 “인종차별은 죄” “부끄러운 줄 알라” 등이 적힌 피켓도 들고 있었고, “한국인도 존중합시다”라고 한글로 쓴 피켓도 있었다. 같은 시간에 이 건물 4층에서 일본 우익단체 ‘헤이트스피치를 생각하는 모임’이 강연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시위자들이 강연회를 위장해 우익 집회를 열고 헤이트스피치를 조장함은 위법이라고 강력히 항의함으로써 혐한 강연을 취소시켰다.⁹⁾
“모토시마는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탄원서에 서명한 40만 명의 일본인들,¹⁰⁾ 오구마 겐지, 이즈미 교수의 선친, 가와사키시의 시위자들, 이들은 가급적 합리적인 사고로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일본의 보통사람들이겠다.

4.
지난 5월 초 아사이 신문은 나가노현의 웹사이트에 재일 한국인을 불량배라고 부르며 “이 불량배들은 일본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다.”라는 내용의 혐한 게시물이 방치돼 있다고 보도했다.¹¹⁾ 이 또한 저격범이나 할복자살을 시도한 방화범 같은 열두 살짜리 일본인들의 짓이겠다. 한국에도 최근 일본의 폭우 피해를 바라보면서 “일본 열도가 이번 폭우로 침몰했으면 좋겠다.”고 푸념한 열두 살짜리 어린애가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 열두 살짜리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이다. 그는 도쿄도지사 당선 이듬해인 2000년 5월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 대만인들, 중국인들이 흉악한 범죄를 거듭거듭 저질러 왔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더 나아가 도쿄도지사는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면 그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커(A. Kerr)는 도쿄도지사가 1923년 관동 대지진 직후 일어난 일본인들의 조선인 학살을 정확히 거꾸로 말했다고 비판하고, 그가 그러한 말의 취소를 거부했다는 점을 주목했다.¹²⁾ 그는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1941년 21세 때 징집되어 공병 제17연대 소속으로 Y와 함께 힘든 신병 교육을 받은 지부 야스토시(治部康利)는 전우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Y가 소속되어 있던 공병대의 상관은 ‘담력 시험’을 빙자해 중국 쉬저우에서 잡은 포로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제발 좀 봐달라’고 애원하며 명령에 따르지 않자, 상관은 ‘근성을 뜯어고쳐주겠다’며 매일 같이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학대를 견디지 못한 Y는 불침번을 서다 자신의 총으로 끝내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습니다. … 그의 죽음은 ‘비적 토벌 중 전사’한 것으로 처리되었습니다.”¹³⁾
이시하라 신타로가 명색이 작가라면 구천을 헤매는 Y의 외로운 넋을 진혼하는 단 한 줄의 글이라도 써야 한다.

5.
이 늙은 열두 살짜리 어린애 이시하라 신타로가 2011년 4월 압도적인 지지로 4선에 성공한¹⁴⁾ 사실에서 유추할 때 동경도의 유권자들 가운데 열두 살짜리 유권자들이 제법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들이 일단 유사시에는 총검을 움켜쥔 어린애들로(bayoneted babies)¹⁵⁾ 돌변하여 선대가 저질렀던 참혹한 전쟁범죄를 거리낌 없이 되풀이할 개연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민중과 정부가 역사로부터 뭔가를 배운 것이 전혀 없고, 역사에서 이끌어낸 정도에 따라 행동한 적도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그나마 경험과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다.¹⁶⁾ 약 2백 년 전에 헤겔(Georg W.F. Hegel)은 위와 같이 지적했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주.
1) 서양 사람들은 첫돌이 되어야 한 살로 셈하므로 우리의 12세보다는 심신의 성장상태가 앞서겠다.
2) Gavan McCormack, Client State (London • New York, Verso, 2007), pp.1-2. 매코맥은 맥아더의 언급을 상기하면서 일본이 아직도 미국 품에 안겨서 만족하는 소년으로 남아 있다고 보았다.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옯김, 『일본의 재구성』 (도서출판 마티, 2008), pp.441-441.
3)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옯김, 위 책, p.461.
4) 위 책, p.474.
5) 위 책, pp.356-357. Jennifer Lind, Sorry States (Ithaca &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2008), p.185.
6) Jennifer Lind, 위 책, p.185. Gavan McCormack, 위 책, p.26. 카토오 코오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은 1992년 7월 관방장관으로 재직 시에 일본군 위안부의 설치나 운영, 감독 등에 일본 정부가 관여했다고 인정한 ‘카아토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2016년 9월 별세했다.
7)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 지음, 김범수 옮김, 『일본 양심의 탄생』 (동아시아, 2015), p.313.
8) 이즈미 지하루, “일본에 건너간 ‘택시운전사,’” 동아일보, 2018.6.26.
9) 동아일보, 2018.6.5. 2016년 6월 5일에도 가와사키 시민들은 코리아타운 주민들과 함께 팔짱을 끼고 도로에 누어 험한 시위대의 행진을 저지했다. 시민들은 시위대에게 “너희는 일본의 수치”라고 격렬하게 항의했다. 험한 시위를 할 수 없게 된 우익들은 몸싸움을 벌이다 결국 시위 중지를 선언하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거리를 떠났다 (동아일보, 2016.6.6)
10)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앞 책, p.357.
11) 조선일보, 2018.5.8.(인터넷판).
12) Alex Kerr, Dogs and Demons (New York, Hill and Wang, 2001), pp.351-352.
13) <아카하타신문> 편집국 지음, 홍상현 옮김, 『우리는 가해자입니다』 (도서출판 정한책방. 2017), p.215.
14) 패전 전 일본제국주의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그것의 재현을 희망하는 국가주의자들이 1989년 이시하라 신타로와 소니 회장 모리타 아키오(盛田昭夫)가 함께 쓴 책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크게 환영하였다는 점도 그의 정치적 성공에 기여하였다.
15) Jennifer Lind, 앞 책, p.2.
16) Suzy Platt, ed. Respectfully Quoted (New York, Dorset Press, 1992), p.111. 이 말은 헤겔의 『역사철학강의』 머리글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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