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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2017년 상반기 [ 2017.06.30 ]

[뉴스재팬=포사단필]

1.
집에서 구로남부시장에 가려면 마을버스를 탄다. 구로중앙로에 들어선 버스는 구로역 네거리와 구로구청 네거리를 통과하여 직진하다가 도림로에서 우회전하여 첫 정류장인 시장 입구에서 멈춘다.

가끔은 운동 삼아 시장까지 걷기도 하는데, 그날도 그랬다. 구로리 어린이공원 앞을 지나 시장으로 걸어가던 중 우연히 길가 2층 한 중국음식점의 옥호 “韓氏燒鸛架”에 눈이 갔는데, 정작 내 관심을 당긴 것은 옥호 위 오른쪽에 쓰여 있는 ‘更上一層樓’라는 다섯 글자였다.

맛좋은 음식을 즐기려면 한 층 더 올라오라는 뜻이겠다. 이 시구는 당나라 시인 왕지환(688-742)이 쓴 <登鸛雀樓>의 결구인데, 시의 전문과 번역은 아래와 같다.¹⁾

白日依山盡 하얀 햇빛이 스러지는 산 黃河入海流 누런 강물 흘러드는 바다.
欲窮千里目 천리 너머를 바라보려고 更上一層樓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른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서예 작품을 선물 받았는데, 이 시를 옮겨 쓴 것이었다고 한다.²⁾

2.
2014년 7월 초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은 4일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했다.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대학 강연은 처음이었는데, 500여 명의 학생과 박원순 서울시장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참석했다. 아래는 그 강연의 일부 내용이다.

“중국과 한국은 이웃나라입니다. ‘백금매옥, 천금매린’이라는 말처럼 좋은 이웃은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하는데,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중한 양국이 서로에게 어떤 이웃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³⁾

그는 양국이 좋은 이웃이자 좋은 친구, 좋은 파트너로서 서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협력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는 또 한반도의 자주 평화통일 실현 과정에 중국은 한반도 국민의 믿음직한 친구가 될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⁴⁾

3.
2016년 9월 5일 항저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음수사원(飮水思源)을 거론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압박했다. ‘물을 마시면서 그 근원을 생각한다’는 뜻인데, 이는 중국이 가슴 깊이 담아두고 있는 옛 왕조시대에의 짙은 향수를 물씬 풍기는 언급이었다.

지난 4월 미국을 방문한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의 비등한 여론을 무시했고, 우리 정부는 의연하게(?) 대처하였으며, 오히려 미국이 한국은 수천 년 간 독립적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고 해명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지난달 19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문재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만났다. 시 주석이 테이블 상석에 앉고 이 특사 일행은 흡사 주석이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한 수하의 모양새여서 베이징 외교가에서도 대통령 특사 면담 때 저런 자리 배치는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국내 언론은 이해찬 특사가 시진핑을 알현했느냐고 불만을 토로했으며, 시민들도 한국 대통령의 특사를 홍콩 행정장관 정도로 하대했다고 속을 끓였다.

4.
‘更上一層樓’를 어떻게 번역해야 될까?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른다,’라고 하면 현재진행형이다. ‘한 층 더 올라가야겠네,’ 라고 하면 곧 올라가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물론 시 주석의 이 선물에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하여 노력하자는 뜻이 담겨 있겠다. 그러나 그의 행보를 보면 ‘다시 한 층 누각을 올랐다,’라고 과거형으로 읽힌다.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미 번국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이 높이 더 높이 올라섰으니, 남한 너는 1층에서 뭉그적거리고 북한 너는 지하 1층에 머리 박은 채 중화인민공화국의 꽃놀이패 구실에 충실 하라는 경고로 읽힌다.

5.
한반도 그 평화로운 초원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배짱이 맞았을 때도 허리 싹둑 잘려 두 토막 났고, 저 둘이 힘을 겨뤘을 때에는 싸움판이 되어 결딴났었다. 앞으로도 저들의 대결이 격화될수록 우리에게 사사건건 자기네 비위를 맞추라고 강요할 터이다. 저들의 험악한 발길을 견제할 예리한 가시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 이상 동북아 삼거리에서 좌우로 헤프게 웃는 청루의 여인이 아니어야 한다.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공식적으로 논의할 시점이 되었지 싶다.

전영규 칼럼리스트

주.

1) 지영재 편역, ⌜중국시가선⌝(을유문화사, 2007), pp.448-449.
2) 조선일보, 萬物相, 2014.3.24.
3) 장펀즈 엮음, 원년경 옮김, ⌜시진핑은 왜 고전을 읽고 말하는가⌝(MBC C&I, 2016), pp.332-333. 백금매옥, 천금매린(百金買屋, 千金買隣) : 집 한 채를 사는 데 백 냥의 금이 필요하고, 좋은 이웃을 사는 데는 천 냥의 금이 필요하다. 좋은 이웃은 돈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뜻이다.
4) 위 책, P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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