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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선택 (Adverse Selection) [ 2017.05.01 ]

[뉴스재팬=포사단필]

1.
기업이나 개인이나 닥쳐오는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면 심각한 재앙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제까지 아무 일 없이 잘 지내왔으니까 앞으로도 별일 없겠지 하면서 느긋하다가 느닷없이 뒤통수를 강타당하고 생사의 기로에 선다. 재앙불감증(Disaster Myopia) 이다. 위기에의 대응은 위기의 예측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위기의 예측은 외적 요인보다는 내적 요인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70년대 개발도상국들에 거액을 대출한 지구촌 유수의 상업은행들이나 2000년대 미국의 주요 상업은행들(money center banks)과 대형 투자사들은 똑같이 닥쳐올 위기를 예측하지 못하여 대재앙에 빠졌다. 상업은행들의 위기 예측 실패에는 몇 가지 내부적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는데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 그 하나로 거론되었다.

2.
기업경영 여건이 변화하면 기업은 변화에 대처한다. 은행들이 금리를 상당 수준 인상하게 되면 부도위험이 낮은 우량기업들은 신규대출을 극력 억제하고 가능한 한 기존대출을 상환하여 이자부담을 절감하고 직접금융을 모색하는 등 자금관리를 강화한다. 반면에 부도위험이 높은 부실기업들은 곤경을 타개하기 위하여 버거운 이자 부담을 무릅쓰고 기존대출의 대환은 물론이고 신규대출을 위하여 은행을 찾게 된다. 은행은 당연히 부실기업에 고율의 이자를 요구한다. 은행의 경영진이 이러한 추세를 간과하면 은행은 우량기업들이 빠져나가고 부실기업들이 들어차 똬리를 트는 역선택에 빠져 은행 자체가 부실기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3.
2013년 2월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 위와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였다. 은행에 다수의 거래처가 있었듯이 박근혜 주변에는 다수의 인사들이 모여 있었다. 은행이 금리를 상당 수준으로 인상하자 우량기업과 부실기업이 나름으로 대처했듯이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도무지 의사소통을 모르는 오만과 독선 등 박근혜의 본색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자 주변 인물들은 그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박근혜는 구중궁궐 깊숙이 들어앉은 여왕처럼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감이 없었다. 자신의 결정에 오류는 없다는 듯 거듭 생각해보는 신중함도 찾아보기 어려웠고 이견의 존중은커녕 이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지독한 불통과 인사의 난맥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국민의 여망을 업신여기고 국회를 우습게 아는 유아독존이 갈수록 가관이었다.¹⁾ 그녀는 나랏일을 걱정하면서 ‘그것은 그렇지 않고 이러이러합니다.’라고 의견을 개진하는 공직자에게 레이저를 쏘아댔다.

대통령은 점점 현실과 단절되어 허공에 떴고, 마치 우량기업들이 은행을 떠났듯이 직언할 수 있는 심지 곧은 인사들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곁을 떠났다. 고작해야 대통령의 심기나 관리할 줄 아는 소인배들이 한 자리씩 꿰고 앉아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을 치고 “지당하십니다.”를 되풀이 하였다. 마치 부실기업들이 은행을 점령했듯이 A급 인사들은 떠나버리고 황교안 같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총리에 올랐으며, 김기춘, 우병우, 안종범, 같은 C급 작자들이 청와대를 점령하였다. C급 부류들은 그녀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들려주고,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었다. 결국 청와대는 쑥대밭이 되었고 대통령은 파면 당했다.²⁾ 역선택은 박근혜의 자업자득, 끼리끼리 오순도순 모여앉아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 깨뜨린 거다.

4
앞으로 열흘 남은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그 역시 예스맨(yes man)들에 둘러싸여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게 될 개연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는 어렵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경고를 기억한다. 새로 들어설 정권이 역선택의 함정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전영규 칼럼리스트

주.
1) 취임 불과 반년 후 정덕구는 박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 감사원장, 경찰청장을 중도하차시켰는데 이는 이들의 임기를 보장하는 헌법체계를 깔아뭉갠 것이라 지적하였다. 그는 더 나가서, 마치 박근혜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이는 5년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도 임기 중에 그를 선출한 국민들에 의해 쫓겨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 권력기관만 완전히 장악하면 마음대로 나라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고 오만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비극’을 다시 초래할 독이 될 수 있다.”고 일갈했다(한겨레신문, 2013.9.16. 정덕구 칼럼).

2) 특히 언론은 대통령이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데도 자꾸 닮아간다고 우려했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세월호, 정윤회 문건 파동, 최순실을 거치면서 민심은 등을 돌렸고,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극점에 이르렀으나 그녀는 막무가내로 수미일관하여 오불관언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1) 과거의 향수를 부추기는 인사들과 국민소득 천 불 시대의 논리에 집착해 대전환의 역사를 방해하는 시대착오적 수구세력을 내쳐야 한다(중앙일보, 2013. 12.17. 송호근 칼럼).
(2) 적잖은 국민의 마음속에 대통령은 이미 ‘끝난’ 인물이 되었다(한겨레신문, 2014. 4. 27. 이동걸 칼럼).
(3)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닙니다(한겨레신문, 2015, 4. 1. 곽병찬,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4) ‘대통령 리스크’는 임계치에 이르렀다. 정치 보복의 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김정은 정권의 숙청극과 본질에서 차이가 없다(한겨레신문, 2016. 3.21. 오태규 칼럼).
(5) 2016년 가을, 급기야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함성이 광화문 광장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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