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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결 [ 2016.06.30 ]

[뉴스재팬=포사단필] 1.
월초에 페루의 대통령에 당선된 쿠친스키(Pedro-Pablo Kuczynski)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경제학자였다. 그는 세계은행, IMF 등에서 일하면서 1980년대에 지구촌 경제의 암(economic cancer)인 개발도상국(개도국)들의 외채문제를 천착한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하였다.

쿠친스키는 <외교문제‧Foreign Affairs> 1983년 가을호에 발표한 논문에서¹⁾ 개도채무국(채무국)들과 선진채권국(채권국)들은 시소의 양 끝에 앉아 있는 두 사람과 같다는 논지를 펼쳤다. 상대의 처지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균형을 유지해야 채무국들의 외채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달리 말하면, 채무국들의 경제개혁과 채권국들의 자금의 추가공급이라는 양자의 조합(調合)을 이룩해야 비로소 채무국들의 외채문제는 장기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회전무대에서 바뀐 주인공들의 외채문제는 계속될 것으로, 상이한 나라에서 상이한 시기에 외채문제는 핵심적인 문제로 곪아터질 것으로 전망했다.²⁾

2.
채무국들과 채권국들의 관계는 상호 의존적, 보완적이어야만 한다는 위와 같은 논지는 전부터 꾸준히 역설되었으나 그것이 현실로 작동된 바는 없다. 예컨대 조지(Susan George)는 1992년에 저술한 『외채 부메랑』 (The Debt Boomerang)에서 해럴드 G. 물턴과 레오 파스볼스키가 함께 쓴 『전쟁채무와 세계의 번영』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인용하였다.

「채무국이 외채를 상환하기 위해서는 외국으로부터 구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상
품과 서비스를 외국에 팔아야 하는 것과 똑같이, 채권국은 만기된 채권을 모두
회수하기 위해서는, 외국에 판매하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외국으로
부터 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³⁾」

이러한 논리는 18C 이후 주기적으로 거듭된 외채위기 경험과 특히 세계 제1차대전 종전 후 독일의 과도한 전쟁배상금 부담에서 비롯된 세계 제2차대전 발발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났지만 그저 희망사항, 잠꼬대 같은 이상론에 불과했다.

1982년 외채위기 이후 채권국들은 채무국들을 “바위에서 피를 쥐어짜내는 것과 진배 없”이⁴⁾ 착취했다고 비난받아 왔다. 198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채권국들의 채무국에 대한 일방적 희생 요구와 그 결과를 놓고 볼 때, 양자는 역시 협조적인 관계, 상호 의존적 ‧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더 이상 간과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채무국들의 입장을 고려해서가 아니다. 채무국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붙인 결과 채권국들은 역으로 일찍이 조지가 우려했던 여섯 가지의 외채부메랑에 봉착했기 때문이다.⁵⁾ 조지는 부메랑의 하나인 이민 폭주에 대하여 이렇게 요약했다.

「수백만 명이 자기 나라의 긴축정책의 참혹한 결과들로부터 탈출하려고 시도
하는 한, 합법 혹은 불법 이민행렬은 도저히 막을 길이 없다. 외채위기 해결은
이들이 자기 나라에서 살아갈 만한 삶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인 출발점이다.⁶⁾」

채권국들은 이러한 경고를 도외시하며 돈놀이를 지속하다가 요즈음 드디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3.
외채문제가 채무국들은 물론 채권국들에게도 똑같이 큰 위협이 된다는 허츠(Noreena Hertz)의 주장도 조지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그녀는 한 발자국 더 나가서 채무국들의 외채문제를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그것이 곧 소이탄이 되어⁷⁾ 채권국에서 폭발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외채의 성격, 외채로서 달성 가능한 경제성장, 상환불능 시 야기될 사태, 상환원리금 부담 등에 관하여 종전보다 더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 하에 도입된 외채는 곧 폭발할 수 있는 폭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경고였다.

1980년대의 외채위기는 해소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러 조지의 예상대로 강력한 부메랑이 서구를 흔들기 시작하였다. 또한 2010년 이후 그리스를 위시한 남유럽 국가들에서 진행된 사태는 외채에 관한 위와 같은 경고가 북반부에서도 고통스러운 현실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주며, 지구촌은 경제에 드리운 암운을 불안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 채무국들보다는 형편이 좋다던 그들이 외채를 가볍게 여기다가 곤고한 처지에 몰려버린 것이다.

4.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가 녹아내린 뒤 몇 주일 지난 다음 아프리카의 유수한 논객의 한 사람인 포틴(Michael Fortin)은 이 엄청난 테러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적어도 서구인들의 경제적 압박에 눌려 뭉개져버린 사람들의 처지에 볼 때 이 끔찍한 공격 행위는 자포자기와 모욕감에서 비롯된 복수라는 점을 인식해야 된다.”⁸⁾

그나마 빈약한 국부는 외채 원리금 상환으로 유출되고, 사람들은 더 빈곤해지고, 더 병마에 시달리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더 빈곤해지고, 그리하여 더욱 더 병마에 시달리게 되고, 악순환이 지속된다. 절망하는 젊은이들이 예서 병들어 죽으나, 폭탄 품고 자폭하거나,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하거나, 한 번 죽기는 마찬가지라고 체념하며 테러 조직에 몸을 던지거나 유럽으로 밀항에 나설 개연성이 점차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익사를 면하고 유럽 어느 나라에 도착한들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안팎에서 자리를 잡기 어려운 그들은 뿌리 뽑힌 지구촌의 유랑민(global desperados)이다.

5.
엊그제 영국인들은 EU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이 EU 탈퇴에 찬성표를 던진 핵심적 이유 중의 하나는 밀려오는 이민, 난민, 테러 위험이었다. 유럽인들의 이슬람 공포증(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도 한목 거들었다. 이민, 난민, 테러 위험이 외채와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런던과 파리 브뤼셀 등 유럽 대도시에서 발생한 테러도 외채와 무관하다고 말하기는 또한 어렵다.

이는 빈곤의 반격이다. 신대륙의 발견 이래 이날까지 한 되 주고 한 섬을 수탈해가는 북반부에 더는 견딜 수 없어 현실화된 남반부 빈곤의 반격이다. 공산품과 농산품의 불평등 교환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이 제공한 자금으로 독재정권이 유지되고, 유수한 은행들은 회전문을 통하여 부패한 권력자들의 자본도피를 알선하고, 고가의 무기를 구입하도록 부추겼다. 남은 귀한 원자재는 헐값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고, 거액의 보조금을 받아 생산된 북의 농산품은 덤핑으로 남의 농업 기반을 질식시켰다. 바르면 피부가 백인들처럼 하얗게 된다는 화장품과 모유보다 훨씬 좋다는 우유를 팔아먹기에 혈안이 된 서구 기업들이 남을 농락했다.

각 채권국의 수출입은행 등 수출신용기관이 제공하는 자금도 여전히 뇌물로 둔갑하고, 환경에 유해하거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퍼부어 채권국들은 채무국들의 환경을 악화시킨다.⁹⁾ 채권국과 그 나라 기업들은 마냥 즐겁고 채무국의 외채는 마냥 늘어난다. 도무지 외채가 무엇인지도 모른 남의 민초들은 ‘긴축정책의 참혹한 결과들로’ 교육기회는 고사하고 생존의 기본 조건조차 박탈당했다.

채무국들의 환경을 악화시키고, IMF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부존자원을 헐값에 팔아넘기도록 채무국들을 밀어붙임으로써 부유한 나라들은 결국 한 번 더 제 발등에 총을 쏘았다는¹⁰⁾ 비판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채권국들이 9.11 뉴욕 테러가 서구에 던진 메시지를 아직도 읽어내지 못한 건 아니다. 그들은 그것은 다만 테러였을 뿐이라고, 천인공노할 테러였을 뿐이라고 자기기만에 빠져 있다가 이민, 난민, 테러, 영국의 EU 탈퇴 사태, 불랙 무슨 데이 하면서 외채부메랑에 휘청거리는 북반부를 자초했다.

조지는 여섯 번째 부메랑인 갈등과 전쟁에 관해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늘 과잉 위험으로 도사리고 있는 갈등과 전쟁은 외채를
늘 따라다니며 현재 전세계의 불안정을 조장하는 데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¹¹⁾」

6.
채권국들은 저들의 문제가 바로 자신들의 문제임을 애써 외면하면서 고리채 돈놀이를 하다가 원리금 상환에 지친 나머지 살길을 찾아 나선 채무국 사람들에게 급기야 문을 걸어 잠글 참이다. 그렇게 해서 이민과 난민 행렬이 멈추고 테러가 사라질까? 입원한 환자가 담당 의사에게 수혈해주는, 전도된 상식이 지배하는 남북관계를 더 강화하겠다는 마당에 이민과 난민 행렬이 멈추고 테러가 사라질 개연성은 미미하다.

허츠는 빚을 탕감해주고, 원조를 제공하며, 채무국들이 외환을 벌어 외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여 그들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삼위일체를¹²⁾ 외채문제 해소의 길로 제시했는데, 오래 동안 여럿이 꾸준히 주장해온 원론이자 희망사항이다. 이것이 실효를 거두려면 무엇보다도 채권국들의 획기적인 정치적 결단과 채무국의 정치 ‧ 경제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쿠친스키의 말대로 오늘도 회전무대 위에서 바뀐 주인공들이 외채문제와 버겁게 싸운다. 지구촌이 이제라도 균형감각을 찾아야 되겠지만, 남과 북이 과연 시소에 함께 앉을 수 있을까? 길은 멀고 험난하다. 영국의 EU 탈퇴가 남과 북의 균형에 대한 관심을 한층 더 촉구하는 하나의 계기로도 작용하였으면 좋겠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1) Pedro-Pablo Kuczynski, "Latin American Debt: Act Two," Foreign Affaire, Fall 1983. p.27.
2) __________________, LATIN AMERICAN DEBT (Boltimore and London: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88), p.145, p.197.
3) Susan George, The Debt Boomerang(Boulder‧San Francisco: Westview Press, 1992), p.93. 재인용. 번역문은 이대훈 옮김, 『외채 부메랑』 p.185. 이하 번역문도 이 책에 따름.
4) Susan George, 위 책, p.xv.
5) 위 책, pp.ix. 조지는 선진채권국들이 당하게 될 외채 부메랑으로 환경오염, 마약 창궐, 조세부담 증가, 일자리와 시장 축소, 이민 폭주, 갈등과 전쟁 등 여섯 가지 사항을 고찰하였다.
6) 위 책, p.ix.
7) Noreena Hertz, The Debt Threat(New York: HarperBusiness, 2004), p.141
8) 위 책, p.161.
9) 위 책, p.44.
10) 위 책, p.173.
11) Susan George, 앞 책, p.ix.
12) Noreena Hertz, 앞 책,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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