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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합지졸 [ 2015.05.31 ]

[뉴스재팬=포사단필]
1.
2013년 10월 4일 20세기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붉은 나폴레옹,” 베트남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 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Vo Nguyen Giap) 장군이 세상을 떴다.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거행되었는데 국장 기간 동안 베트남 내 모든 공연장, 골프장, 술집 등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는 베트남 땅에서 프랑스를 몰아냈고(1954) 미국을 쫓아냈으며(1975) 침략한 중국군까지 물리쳐(1979) 금세기 최고의 전략가로 평가받은 군인이었다. 베트남인들은 구국의 영도자 호지민(胡志明) 다음으로 그를 존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해방된 베트남은 1945년 9월 2일 호지민이 이끈 베트남독립동맹 주도하에 독립을 우선 선포했지만 국가 체제를 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9월 23일부터 식민 종주국 프랑스의 재진입 사태에 직면하였다. 영국의 협조로 베트남을 재점령한 프랑스는 1946년에 남부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기에 이르렀으나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무장 게릴라들의 저항이 계속되었다. 한편 북부에서 저항하던 세력은 프랑스군에 밀려 하노이를 포기하고 산악지대에 거점을 마련하여 유격전으로 전환, 장기전에 돌입했다.

프랑스군은 1953년 11월 교통과 군사적 요충인 베트남 북서쪽 라오스와의 접경 지역에 가까운 디엔비엔푸(Dien Bien Phu)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강력한 요새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베트남군의 저항을 일거에 제압하면 그 정치적 ‧ 군사적 영향력은 베트남은 물론 라오스와 태국까지 파급될 터였다. 디엔비엔푸는 동남아에서 가장 견고한 난공불락의 프랑스군 요새라고 자타가 공언하였다.

프랑스에게 디엔비엔푸는 베트남의 재식민지화를 위하여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켜야(must be defended at any cost) 하는 요새였다. 반면 베트남으로서는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그 적군 소굴의 섬멸 전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해야만(must be won at all costs) 되는 전투였다. 도미노 이론에 근거하여 미국이 프랑스군에 거액의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있었기에 디엔비엔푸 요새에서의 숙명적인 대결의 결과는 명약관화한 듯 보였다.

온갖 난관을 눈물겹게 극복하면서 강고한 포위망 형성 등 전투 준비를 마친 베트남군은 마침내 1954년 3월 13일 지압 장군의 지휘 하에 프랑스군 1만 6천여 명이 주둔하고 있는 디엔비엔푸 요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포위당한 프랑스군은 미국의 공중 지원까지 받으면서 필사적으로 응전하였다. 전투는 5월 7일까지 55일 동안 계속되었다. 전투 결과는 프랑스군의 참패였다. 프랑스군 5천여 명이 전사했고 1만 1천여 명은 포로가 되었다. 물론 베트남군도 훨씬 더 큰 피해를 면할 수는 없었다.

국제사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베트남의 승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며 베트남을 다시 보기 시작하였다. 지압은 디엔비엔푸 전투에 관한 저술에서 “총력지원 최전선, 전력투구 승리쟁취(every thing for the frontline, every thing for victory)”를 여러 차례 논급했다. 총력 지원과 전력투구가 말에 그친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실천되었고, 바로 이러한 전 인민의 눈물과 땀과 피어린 희생이 승리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얘기다.

화려한 깃발을 흔들면서 구호를 크게 외친다고 해서 총력 지원과 전력투구가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상호 믿음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인민은 군을 신뢰하고, 군은 독립을 상실하여 노예로 살기보다는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겠다고 결심한 인민을 신뢰하였으며, 이에 따라서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도 굳건해졌다. 인민과 군은 호지민이 영도하는 지도층을 깊이 신뢰했다. 믿음이 공고하였기에 일치단결하는 총화가 이루어졌고, 그 바탕 위에서 총력 지원과 전력투구가 가능했다. 당은 전쟁의 목적을 국가의 독립, 토지 개혁, 사회주의 지향 등으로 명시함으로써 리더십을 더욱 강화하였다. 지압은 “당의 리더십 아래 이루어진 군과 인민의 일치단결이 승전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기술하였다.

지압은 디엔비엔푸의 승전은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이 스스로 국가와 국가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 봉기한 대규모 해방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2.
김종대의 <위기의 장군들>은 한국군의 민낯을 어지간히 보여준다. 일본군 전통을 답습해 군대에서의 사람은 사실상 소모품이었고, 인간적 유대에 기초한 인본주의정신은 무너져 있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이 땅에서 수없이 논의되어온 터이다. 군이 국익(國益)이 아니라 군익(軍益)을 추구한다. 한국군은 투철한 기능체 조직이다. 기능체 조직은 원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성장해가면서 구성원들의 편안함과 이익이 원래의 목적을 압도한다. ‘기능 조직의 공동체화’라고 부르는 병리 현상이다. 공동체화 현상이 진행되는 조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들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는다. 남북 군사력을 측정했는데 육군은 북한 대비 열세, 해군과 공군은 대등하거나 우세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예산 삭감을 우려한 각 군이 ‘우리가 열세인 것으로 해달라’고 집요하게 로비하였고, 국방연구원장은 국방부의 요구대로 데이터를 바꾸라고 연구원들에게 지시했다. “각 군 진급심사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한 장성들이 진급이 유력한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네가 진급추천은 되었으나 청와대에서 뒤집힐지 모른다. 청와대에 줄이 있거든 지금부터 잡으라’고 노골적으로 정보를 알려주고 권력에 로비하라고 권유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귀싸대기를 얻어맞은 뒤 한국군 합참의장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국지전에서 전투기로 타격하는 것이 교전규칙 사항인가, 아니면 한국 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단독으로 결정할 일인가”라는 질의서를 보냈다. 샤프 사령관은 11월 30일께 우리 국방부에 답신을 보내 한국 정부가 자위권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이 답변서가 도착하기 전까지 합참의 장군들은 자위권이냐, 교전규칙이냐로 양분되어 논쟁을 했다. 쉽사리 결론이 내려지지 않자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어디에 해당되는지 국제법 학자에게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로 했다’는 희대의 브리핑을 했다. 교전 다음 날, 한미연합사 간부회의에서 정보작전부장 존 맥도널도 소장이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이 되면 스스로 판단한다. 그런데 어제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 시간, 매 분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군보다 못하단 말인가?”

3.
<위기의 장군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이 뒤숭숭했다. 프랑스군의 디엔비엔푸 요새를 격파한 베트남군과 인민의 단호히 일체화된 모습이 맴돌았다. 나태해지고 명확한 임무를 망각한 군부가 정치세력화 하여 정부를 위협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된다는 파농(Franz Fanon)의 지적도 기억되었다. 나라가 군대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파키스탄과 알제리아는 군대가 나라를 갖고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기억되었다.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의 포학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서유럽에서 나치(Nizis) 가 저지른 그것보다 더 심했다는 촘스키와 허만의 비난도 기억되었다. 다낭과 후에 지역에 많이 서 있는 한국군 증오비(憎惡碑)도 기억되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군은 정치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의무와 군사적 조언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원리라는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인용했다. 저자의 우정 어린 충고가 이어졌다. “복종해야할 때 복종하더라도 말을 제대로 하는 것, 이것보다 더 큰 장군의 덕목은 없다. 그런 바탕 위에서 비로소 한국적 군사문화가 열린다.”

글쎄. 졸병은 소모품이라는 인식은 아직도 뿌리 깊다. 군부대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하고 조작한다. 주요 무기 도입 사업은 엿을 나눠 먹듯이 너도 하나 먹고 나도 하나 먹듯 나눠 먹었다. 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군에게 우리의 작전을 통제해달라고 애걸하면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그러고도 입만 열면 자신들의 전매특허인 양 혀끝으로 국방과 애국을 독점하면서 기고만장하는 군의 작태를 보면 ‘그런 바탕 위에서 비로소 한국적 군사문화’가 열리기는 계룡산에 올라가 은갈치 잡기보다 더 어렵지 싶다.

전방이 아닌 서울 쪽을 유달리 경계하면서 밥그릇 확보 전투에 열중하는 군을 국민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한국군은 신뢰의 위기에 봉착하였다. 도무지 주제 파악을 못하는 군이 참 안쓰럽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주.
1. 일본의 파시즘(Japanese fascism)으로부터 베트남 인민을 해방시킨다는 것이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이 내세운 재점령 명분이었다(Vo Nguyen Giap, 『Unforgettable Days』, (Ha Noi, The Gioi Publishers, 2010), 247.
2. Vo Nguyen Giap, 『Dien Bien Phu』, (Ha Noi, The Gioi Publishers, 2011), p.156.
3. 위 책, p.156,157.
4. 위 책, p.10. 이는 호지민이 지압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5. 위 책, p.53.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전비 예산 중 미국 원조 비중은 1951년 12%였으나 1953년에는 71%로 현저히 높아졌다.
6. 앞 책, 지압은 p.34, 70,112, 153, 198, 261, 이렇게 여섯 차례나 강조하였다.
7. 위 책, p.172
8. 위 책, p.49,50, 161, 261.
9. 위 책, p.178.
10. 위 책, p.201.
11. 김종대, 『위기의 장군들』, (메디치, 2015), p.194.
12. 위 책, p.252
13. 공병호, 『공병호의 독서노트』, (21세기북스, 2003), p.271, p.286. 공병호는 이 책 13장 “조직을 몰 락시키는 세 가지 덫”에서 ‘기능체의 공동체화’를 첫 번째 덫으로 소개하였다.
14. 위 책, pp.200-201.
15. 위 책, p.297
16. 위 책, p.285.
17. 위 책, pp.285-286.
18. 위 책, p.286.
19. Vijay Prashad, The Darker Nations (New York, The New Press, 2007), p.138. 재인용.
20. 파라크 카나, 이무열 옮김 『제2세계』, (에코의서재, 2009), p.211. Martin Meredith, The State of Africa (London, Free Press, 2005), p.447.
21. Noam Chomsty, Edward S. Herman, The Washington Connection and Third World Fascism (Boston, South End Press, 1979), p.322.
22. 김종대 앞 책, p.325.
23. 위 책, p.66.
24. 위 책, p.254.
25. 위 책,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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