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1년 01월 27일


- Handheld mask allo...
- Is the US-China Tr...
- Asian Project Mark...
- Takemasu, Making C...
- Issues with Policy...
- Social Security fo...
- Patrick Harlan (TV...
- Sony’s Revival
- Will India Manage ...
- THE OBSCURE ΙΜPRIN...

일본어로 수학 가르치는 일원 상록 학습관



hold on Korea Society


칼럼Zone

국제 금융 浦沙短筆
풍경, 2020년 한국
히로미의 사설보기
고령화사회 대책 대강(代綱)
速 종합 격투기 통신
UFC 챔피언 생피에르, 최고...
게일 킴 핫라인
Overview of and ...
Here's What Happened
Independent Film...
재일교포 그리고 일본
재일교포 이야기
Bold English
Go by the book
SOCCER INVESTOR
공격수 아데바요르, 레알 완전...
Asia Pacific Yard
"Night Schools" ...
일본인에게 영어를
일본 산의 매력
어느 바텐더의 날들
十夜「ある冬の夜の出੖...
한지붕 두나라
일본을 떠날 때까지
평범녀의 빌린 인생
무라카미 류
민주주의 상징 김대중
70년 대선, 박정희와의 한판...
각양각색 동북아 소식
일본항공, 아메리칸 에어라인과...
Movie Craze
(Old) Sex and th...
The 힐링여행 SOUM숨
Black sauced noo...
자전거 일본 여행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계가 보는 일본




flag counters

세이코, 마침대 2세대 시각장...
두번째 모유뱅크 개설, 도너 ...
조리사 로봇, 한번에 면 3개...
태국 방콕에 사상 첫 일본 고...
러시아 내 최초 일본 물품 전...
[칼럼] 호리천리(毫釐千里)
지자체, 외국인 안전위한 재난...
헬로키티 신칸센, 하카타-신오...
외국인 관광객, 품목 구분없이...
일본 가정 내 결정권, 아내의...


전체기사 NJSave up to 70% on your next stay with Hotelclub.com
박정희 vs 고르바초프 [ 2015.12.01 ]

[뉴스재팬=포사단필] 한국을 안정적인 경제 기반 위에 올려놓은 박정희와 소련을 변화시키고 동서냉전을 종식시킨 고르바초프는 한 가지 꼭 닮은 점이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이 각각 열정적으로 추진하여 이룩한 훌륭한 성과 때문에 권좌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박정희는 5.16 쿠데다 후 이 땅에서 가난을 추방하겠다는 일념으로 경제개발에 몰두하였다. 증산, 수출, 건설, 새마을운동, 중화학공업 추진 등 그의 집념과 확신에 찬 지휘 하에 이룩된 경제적 성과는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다. 1960년대 초반 한국의 현단계에서 핵심적인 과제는 빈곤의 추방과 경제적 자립이라고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였다. 박정희는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여 그 과업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여 미증유의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박정희가 이룩한 경이적인 경제적 성과는 농업을 희생시킨 불균형 성장이었으며, 물심(物心)의 평형을 파괴한 가치관의 전도를 야기하였다. 한마디로 경제성장과 사회정의 실종이 교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죽했으면 전두환과 노태우 일당조차 “민주‘정의’당”이라는 깃발을 내세웠을까. 한국은 물신주의와 배금주의로 전도된 가치관 때문에 한 세대가 흐른 현재에도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박정희의 집념과 특혜를 입은 대기업과 국민들의 땀이 결합하여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국민들은 무엇보다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지도자를 신뢰하였으며 정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추종하였다. 소득이 증가하고, 의식수준도 향상되었으며, 자연스럽게 기대수준도 높아졌다. 달리 말하면 각성된 대중이 출현한 것이다. 대중은 더 폭 넓은 자유와 더 공정한 사회를 요구하였고, 노동3권을 박탈당한 노동자들은 제 몫을 받고자 투쟁하였다. 이는 필연적인 역사의 발전 방향이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유신정국으로 이 필연적인 방향을 역행하였다. 1979년 가을, 박 정권은 김영삼의 국회의원직을 박탈하였다. 한 국회의원의 제명은 동시에 박정희의 명을 재촉하였다. 10월 26일, 심복이던 김재규는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던 박정희를 쏘았다.

1985년 새롭고 젊은 지도자로 깜짝 등장한 고르바초프는 전임자들과는 달리 소련이 처한 곤고한 처지를 정직하게 사실 그대로 인정한 첫 지도자였다.1) 고르바초프는 집권하면서 개혁(Perestroika)과 개방(Glasnost)을 내세웠다.2) 1980년대 후반 소련의 현단계에서 추진해야 되는 핵심과제를 정확히 인식했음이다. 그는 파산 직전의 소련경제를 살리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였고, 동독을 비롯한 동구 각국의 민족주의를 용인하고 그들의 독립을 묵인하였으며 서구에게 거액의 경제원조를 요청하였다.

화려한 수사만으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만 앞세우고 성과가 없는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불만은 곧 고르바초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페레스트로이카는 허공에 떠도는 비행기로 비유되었다. 조종사가 어디에 착륙해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이륙시킨 비행기와 같다고,3) 목적지에 활주로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이륙한 비행기와 같다고4) 혹평받기 시작하였다. 고르바초프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인 동시에 로마의 교황이고자 했으며, 개혁가인 동시에 기존 권력구조의 방어자가 되고자 했다.5) 훌륭한 민주주의자인 동시에 훌륭한 공산주의자가 되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결국 불가능하였다.6) 개혁정책은 출발부터 추진동력을 획득하지 못했다.

개방정책의 요체는 언론의 자유였다. 표현과 비판의 자유는 획기적으로 신장되었다. 소련 국민들은 개방을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해도 좋다는 허용(a licence to speak)으로 인식하였다.7) Glasnost에 힘입어 언론에서는 경제문제 전반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변화를 촉구하였고,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단기간 내 곧 무슨 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게 만들었으며, 그러한 기대가 어긋나자 진정한 개혁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냉소주의부터 자리 잡았다. 고르바초프는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밀렸다. 그런 의미에서 강력히 추진한 Glasnost 때문에 고르바초프 자신이 희생되었다고 본다.8)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으로 모스크바에 역시 각성된 대중이 출현하였다. 1991년 8월 크리미아에서 휴가 중 바로 그가 임명한 군부 지도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옐친(Boris Yeltsin)이 강력히 저항하여 쿠데타를 좌절시켰다. 옐친의 저항을 지탱해준 세력은 바로 고르비의 개방정책에 의하여 출현하게 된 모스크바의 각성된 대중이었다.

대중의 요구 수용 여부에서 박정희와 고르바초프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박정희는 유신정국에서 긴급조치를 거듭하면서 각성된 대중의 요구를 모질게 밟아버렸다. 그는 결국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박정희 사후 이 나라는 다시 무자비한 군홧발 아래 신음하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비록 옐친의 등장을 견제했지만 역사의 흐름을 정확히 인식하여 옐친과 러시아의 존재를 인정하였고, 소련 연방의 해체를 용인하였으며, 냉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1991년 12월 25일 그는 퇴임식도 없이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섰다. 1991년 12월 31일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USSR)은 사라지고 다음 날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등장하였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박정희가 1960년대 초반 한국의 핵심과제는 빈곤의 추방과 자립경제라고 정확히 인식하였듯이 1970년대 후반의 핵심과제는 각성된 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적확히 인식하고 권좌에서 물러나 노년을 보냈다면 그는 지구촌이 인정하는 훌륭한 지도자로 추앙받았을 터이다. 역사는 고르바초프를 20세기의 가장 훌륭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평가는9) 과장이 아니다.

전영규 칼럼니스트

주.
1) 포사단필 “풍경 2012년 2월”(2014. 2. 28) 참조.
2) 1989-91년 기간 중 소련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은 글모음 『돈잔치‧빚잔치‧말잔치』에 간략히 정리되어 있다(pp.204-229).
3) Jonathan Steele, Eternal Russia(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4), p.85.
4) Ronald Grigor Suny, The Soviet Experiment (New York‧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8), p.461.
5) 위 책, p. 457.
6) Bernard Gwertzman and Michael T. Kaufa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Soviet Empire (New York, Times Books, 1992), p.xi
7) Jonathan Steele, 위 책, p.9.
8) Bernard Gwertzman and Michael T. Kaufan, 위 책, p.xv.
9) John M. Thompson, Russia & the Soviet Union(Boulder‧San Francisco‧Oxford, Westview Press, 1994), p.290.


대한민국 유일의 일본 뉴스 전문 매체- 뉴스재팬 (NewsJapan.net)


< Copyrights (C) 뉴스재팬 / www.newsjapan.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Facebook Share / 페이스북 공유
To E-mail / 기사 메일송신 | To Print Out / 기사 출력


  • Unexpectedly Surprisingly The Most Popular News >>   의외로 가장 많이 읽혀진 뉴스
“Ask a Pediatrician” baby workshop
木育(mokuiku) Nature it is
Tokyo Sky Tree opens
To deal with adversity, Japanese companies...
All Nuke Reactors Shut Down
"Night Schools" in the Affected Area Start...
Save pets in Fukushima
PiFanでは毎日、星が輝く
特別展-SFアニメーションの伝説:宇宙&#...
Dance course becomes compulsory curriculum...
Enjoy Exciting PiFan with Ha Seon Park, th...
전설의 프로레슬러, 스팅(Sting) 단독 인터뷰
최경량 월드챔프, 레이 미스테리오 단독 인터뷰
프로레슬링 디바, 크리스탈 단독 인터뷰
NO.1 아나운서 후나키, 타지리 일본행 만족
WWE 차세대 기대주, 바비 레슐리 단독 인터뷰
도시바 반도체 데이터, SK하이닉스로 불법 유출?
일본 대학생, '아이팟으로 출첵!'
후속탐사기 개발착수, 생명의 기원 규명 다가서
미 코니스, 10GB 초소형 하드디스크 개발
토미오카 공장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내수 활성화로
自転車の道路交通法
글쓴이
비밀번호 * 삭제시 필요합니다.(4~6자이내)
제목
내용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등 법률에 위반되는 글은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물에 대한 민형사상의 법적인 책임은 게시자에게 있으며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거나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글쓰기전 최종체크
주간 베스트 뉴스











exclusive image

뉴스재팬 소개 / About Us  |   광고 제휴 / Advertisements  |   만드는 사람들 / Staffs  |   By Other Presses                                                                              시작페이지로  |   즐겨찾기로

 
NPO 法人 |   Incorporated Non Profit Org. Answer Asia / 비영리기구 앤서아시아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를 생각하는 모임)
Main Spot |   アンサ一アジア ヘッドオフィス is located at Takajukacho Hirakata Osaka Japan
K Spot |   Alternative School is at #126 F1 Sangroksu Apt Mall Ilwonbondong Gangnamgu Seoul Korea
T Spot |   PR Place is at Soi Vuthiphan Rachaprarop Rd. Rajathevee Bangkok Thailand
Contact |   E-mail : newsjapanet@gmail.com | Need a phone number? Email first | Very active from the year of 2005
          Copyright ⓒ 2004 ~ 2020 NewsJapan.net. All rights reserved. Contact newsjapanet@gmail.com for more informatio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