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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으로 향하는 아시아 사람들 [ 2006.08.11 ]

저녁시간 동경 쇼쿠안도오리는 세계 각국에서 온 샐러리맨들로 붐빈다. 쇼쿠안도오리는 식사와 유흥의 거리이다. 한국과 대만식당이 즐비하고, 심지어는 연변식당도 있다. 이 거리는 현재 동경의 글로벌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일본에 일하러 온 각국의 샐러리맨, 샐러리우먼들은 퇴근한 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대개는 근처 주점이나 가라오케로 장소를 옮겨 2차를 즐기고, 전철이 끊어지기 전에 다시 오오쿠보역과 신오오쿠보역으로 달려가 막차에 몸을 기댄다.

뉴욕, 런던 분위기가 나는 동경

특히 주머니가 두터운 월급날이나 보너스 지급일에는 근처의 카부키쵸까지 3차를 나서는 넥타이 부대원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최근 5, 6년 안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들이다. 이제 동경에서 마치 미국의 뉴욕, LA나, 영국의 런던 같은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로 세 종류의 민족들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제일 많은 수가 한국인 혹은 재일동포, 그 다음으로 중국인, 대만인, 중국계 일본 화교들, 그리고 조선족 동포들이 눈에 띈다.

두 번째 부류의 경우 모두들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여기에 세 번째로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새로 대량 유입되고 있다. 특히 인도인의 유입이 부쩍 늘었다. 한반도와 대만에서 유입된 사람들은 그 뿌리가 청일전쟁 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한국인, 대만인, 혹은 조선족으로 일본 기업에서 근무하는 샐러리맨들이나 인도인들은 아주 최근에 유입된 계층이다. 이들의 특징은 대개 일본회사에서 정사원 혹은 파견사원으로 일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롯본기와 롯본기 힐즈 주변에 난립해 있는 서양계 회사에서 일하는 서양인 샐러리맨들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또한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롯본기, 카부키쵸, 아카사카 등지의 환락가의 접대부 여성들과도 엄연히 구분된다.

과거에는 한국, 대만, 연변, 인도에서 도일해서 일본 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은 재일교포의 입사를 금지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3, 4세 재일교포들에게는 정사원으로 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일본에서 고용관련법들이 국제화되어 가면서, 외국인에게 취업의 문호를 개방한 것은 80년대부터이다. 구미의 백인들에게 영어교사나 연예인 비자를 주기 시작하면서, 취업의 문호를 개방하였고, 특히 80년대 말부터는 현저히 줄어드는 3D 업종의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을 대거 수입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대기업의 정사원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는 2000년대부터 찾아왔다.

일본으로 간 아시아 사람들

라지(25세·남·가명)씨는 인도의 델리에서 2000년 일본으로 왔다. 새로 문을 연 리츠메이칸 아시아태평양 대학에 합격하여 일본 정부로부터 전액 수업료 면제와 생활비 보조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이 대학으로 스카우트돼 온 셈이다.

라지씨의 특기는 컴퓨터와 영어였다. 컴퓨터는 이미 인도에서 자격증을 여러 가지 따 놓은 상태였고, 영어는 초등학교부터 인도에서 2년간 다니던 대학까지 학교에서 공용어로 배워 왔고 써왔던 터라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대학에 입학하고 2년간 규정된 일본어 과정을 모두 이수했다. 그래서 컴퓨터 언어, 영어, 힌두어, 일본어 등 4개의 언어를 구사한다. IT기술과 외국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일본 기업에게는 넝쿨째 굴러들어 온 호박인 것이다.

쇼쿠안도오리에서 라지씨와 한국 음식점을 들러 저녁을 하면서, 회사 생활의 근황을 들었다. 그는 우선 NTT(일본 전신 전화)에서 일한다는 것을 뽐내듯 명함을 내밀었다. 곧이어 월수가 50만 엔(한화 약 480만 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IT자격증이 여럿이고, 영어와 일어가 탁월한 일본인 직원보다는 월급이 적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모르고, 인도에서 받는 월급의 20배가 된다"고 했다. 인도인으로서 출세했다고 볼 수도 있다. 과거에 인도인들은 영국이나 미국, 혹은 호주 등지에 가서 출세하는 것이 보편적이었으나, 이제는 일본도 동경과 선호의 대상이다. NTT파견 사원이고, 정년이 보장된 것도 아니지만, 라지씨는 만약에 해고가 되더라도 일본에서 새로운 직장을 잡는 것은 쉽다고 했다.

사실 일본의 경제는 활황 국면으로 돌아서서, 얼어붙었던 취업 시장도 이제는 피고용자 시장(sellers' market)이 되었다. 황레이(26세·여·가명)씨도 이러한 경제 활황의 덕을 보고 있는 대만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일본의 중소기업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다. 황씨는 대만에서 여상을 나와서 직장을 다니다가 일본 유학을 선택했다.

라지씨와 똑같은 케이스로 장학금 혜택을 받고 대학을 졸업한 황레이는 4개 국어(중국어·대만어·일본어·영어)를 구사한다. 황레이를 고용한 A사의 야노 사장(가명· 남·52세)은 "일본 여성들은 요즘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데, 레이 같은 대만 여성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열심히 돈을 번다"고 칭찬했다.

황씨는 월수 25만 엔(한화 약 200만 원)에 보너스 없이 일을 하지만, 대만에서 대졸 초봉이 12만 엔 선인 것에 비하면 두 배정도 많은 것이다. 황씨의 장래 희망은, "일본 국적을 취득해서 대만에 돌아가서 돈 벌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봉(가명·남·34세)씨는 전형적인 연변 출신 조선족이다. 어머니가 중국 공안에게 바치는 형의 출옥 뇌물을 벌려고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서울에서 1년간 식당일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들은 한국은 아주 나쁜 나라였고, 그래서 한국에는 가지 않기로 일찍이 작정했다.

최씨도 중국의 일본 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부인과 같이 일본 유학의 길을 택한 케이스. 전액 장학금을 받았지만, 생활비는 부인의 아르바이트와 자신의 골프장 캐디 생활로 충당했다. 2년 전 대학 졸업 후 캐디를 하다가 알게 된 일본 중소기업 부사장의 스카우트로 지금은 그 회사의 국제 담당을 맡고 있다.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주로 중국과 재미 동포 한인들을 고객으로 상대한다. 그는 "일본에서 출세해서 돈도 많이 벌고, 일본에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끔 일본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예상보다 힘들고 돈도 그렇게 많이 버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은 일본에서 출생한 딸과 전업주부가 된 부인과 같이 회사 기숙사에서 산다.

이금자(가명·여·23세)씨는 서울의 중산층 가정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유학의 꿈이 강해 일본을 택한 케이스다. 반액 장학금을 일본 대학에서 받고 동해를 건넌지 6년이 다 되어 간다.

"대학 4년동안 방황을 많이 했어요. 학교가 벳부에 있었기 때문에, 답답하기도 했고, 일본인 교수들이나 중국인 교수들이 영어를 못해서 수업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을 때는 정말 일본을 떠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1년 반 전에 졸업해서 모 미국계 증권회사 동경 지사에서 일을 한다. "고객은 주로 한국 회사에요. 증권 전산망을 깔아 주고 고객 애프터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한국어, 일어, 영어가 능숙한 한씨는 연봉 540만엔 (한화 약 5천만원)에 고용 계약을 맺었다. 장래의 꿈이 뭐냐고 묻자, "일본 영주권을 얻고, 세타카야구에 좋은 맨션을 하나 사서, 평생 혼자 사는 게 꿈"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이제 동경은 전 세계인이 모여 사는 아시아의 유일한 글로벌 도시로 변해 가고 있다. 이 변모하는 글로벌 도시에 새로운 계층으로 나타난 외국인 샐러리맨, 샐러리우먼들은 그들 모국에서는 새로운 성공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후카가와 유키코 동경대 교수(여·47세)는 "일본의 소자화 현상과 노동력 부족으로 말미암아, 일본 정부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외국인 두뇌를 수입할 것이다"라 잘라 말한다. 특히 그는 "최근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와 간호사의 대량 수입은 이미 정부에서 기획이 끝난 상태"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새로 유입된 인도, 한국, 중국, 대만의 샐러리맨들이 과연 종신 고용을 얻고, 영주권을 취득해서 일본에서 떳떳한 대우를 받고 살아갈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라지씨는 "일본에서 몇 년간 돈을 벌고, 미국이나 인도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환영과 비난을 동시에 받는 '아시아의 인재'

대만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황씨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인도로 돌아갈 생각이지만, 라지씨는 그래도 "일본을 존경하고, 고마워 한다"고 했다. 반면에 일본인이 되고 싶어하는 황씨는 "인도인들은 일본인들이 그들을 선호한다고 착각하고 있으나, 일본인들은 정작 우리 대만인을 장기적인 파트너로 생각해요"라고 일침을 가했다. 누가 옳던 간에, 인도인, 대만인 직장인들이 일본을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이것은 극심한 반일 감정을 갖고 있는 중국인, 한국인과는 대조적이다.

일본에서 LA폭동이나 프랑스 인종 폭동 같은 유혈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상상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러나 동경은 이미 '글로벌 시티'로 발전하고 있다. 국가와 국가간 만이 아닌, 계층간의 갈등이 국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의 IT기술자들은 일본인의 직장을 파고들 것이고, 이것은 적지 않은 일본인들의 원망을 살 것이다.

비서직을 대만 여자들이 독식할 경우도 똑같은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이승엽 선수의 불붙은 방망이처럼, 외국인의 독주는 일본에서 환영과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 계층간의 갈등이 국제화된다면, 첫 희생양들은 바로 이들 샐러리맨, 샐러리우먼들일 것이다.

오인규, 미국 UC 버클리 대학 경영학 교수

일본 뉴스 전문 매체-뉴스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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